
(사진은 www.flickr.com 에서 빌려왔으며 본문의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미국에 있는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어느 유명한 대학교의 기숙사 식당을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생각보다 너무 비싼 물가에 놀라던 차에 대학교 학생들의 기숙사 식당의 밥값이 한끼에 평균 10 달러가 되는것에 또한번 놀랐지만 이런저런 여러가지 음식들이 부페식으로 제공되고, 그러한 음식들의 조리 기술이나 맛 또한 일반 식당에 못지않게 훌륭하기에 가격에 비해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때마다 내 마음을 편치않게 하는 것이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부페식으로 운영되는 식당의 풍족한 음식을 만끽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식당 건물의 바로 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이었다.
다른 동네들과는 달리 대학교가 있고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그 지역의 특성상 노숙자들의 존재에 대한 지역사회의 거부감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 구역의 공원에 비교적 많은 수의 노숙자들이 기거한다고 전해 들은 바 있다. 그렇기에 그 지역 주민들이나 그곳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길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이 그저 그런 일상생활의 한 요소인듯 하였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는 사람은 밥을 사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렵게 어렵게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무엇을 어쩌겠냐만은, 부페 식당에서 서너접시를 가져와 다 먹지도 못하고는 남겨서 버리는 일부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왜 저런 음식을 아껴서 나누어 먹을 수는 없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특히나 자국에서 식탁 가득 풍성하게 차려놓고 식사를 하던 버릇이 있는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학생들의 음식 낭비 성향은 어릴때부터 그릇에 먹을만큼만 음식을 덜어 남기지 않고 다 먹는 습관이 든 유럽계 학생들에 비해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한번은 내가 점심을 먹고 있는 바로 옆 테이블에 중국계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치킨까스를 하나 접시에 담아와 놓다가 자기 실수로 치킨까스가 식탁에 떨어졌다. 수시로 직원이 깨끗이 닦아주는 그곳 식탁에 기름에 튀겨 외부에 무엇이 쉽게 묻지 않을 치킨까스가 살짝 접시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식탁에 떨어진 치킨까스를 그대로 버리고 다시 부페로 가서 새 치킨까스를 담아와서 먹는다.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점심을 먹으러 온 입장에서 굳이 식탁에 떨어졌던 것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그 모습을 보던 나는 괜스레 화가 났다. 물론 그 학생이 식탁에 떨어졌던 치킨까스를 먹는다고 해서 새 치킨까스 하나가 길거리 노숙자들에게 돌아가거나 할리는 없다. 또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노숙자들에게 당장 한끼의 밥은 오히려 의타심을 자극하여 그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사회의 극명한 대조를 보며,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미국의 단면 앞에 '아, 이래서 유럽사람들이 사회보장을 외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 살고 있다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어 좋으시겠어요. 나라에서 무슨무슨 수당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면서요?” 라면서 내가 무슨 천국에라도 살고 있는양 부러워들 하지만, 실상을 아는 나로서는 오히려 씁쓸한 미소를 지을 따름이다. 역으로 나는, 그저 자기가 열심히 일한대로 수익을 얻고, 원하는 방법으로 저축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제도가 오히려 부러웠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본 프랑스나 벨기에, 혹은 네덜란드에서 그 많은 실업자와 저소득층이 나라에서 내려주는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세금으로 그들의 수입에서 적게는 20%, 많게는 거의 절반에 이르는 액수를 나라에 바치기 때문이니까.
그러다보니 어떤 경우에는 어떤 사람은 한달 내내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열심히 출근하여 일해서 최저임금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자의이건 타의이건 직업이 없이 집에서 놀면서 매달 거의 최저임금과 맞먹는 액수를 수당으로 받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제도를 악용하여, 직업이 없는 것으로 신고하여 다달이 각종 수당을 수령하는 동시에 마음이 내킬때마다 불법으로 청소나 집수리 등의 여러가지 일을 하며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니 막대한 고소득을 올리는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열심히 아둥바둥 일을 하기보다는 편안히 집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회평등이란 “모두가 함께 일하고 나누는 삶을 만든다”는 이상과는 달리, 그 실상은 우리 인간의 기본 심리에 역행하여 사람을 게을러지게 만들고, 우리 모두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제도가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곤 하였다. 그런데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넘어서 기본적인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과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가 극명히 두드러지는 미국의 현실을 보니,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보장제도 라는 것이 몇가지 부작용이 있기는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에 회의감을 느낄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위에서 예로 든 대학교는, 미국은 물론이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기에 해마다 그곳으로 공부하러 오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도 적지 않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매일매일 등교를 하고 식사를 하러 오가는 길목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들을 보는 모습에 익숙해질 것이다. 먼곳에 나와 공부하는 자신의 생활이 바쁘고 분주하기에, 아침이면 한여름에도 추운 밤을 보내고 힘겹게 일어나 공원에 있는 공동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는 사람들곁을 거리낌없이 뛰어 지나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비단 내가 보고 온 그 지역만의 특성이 아니라 미국 전체에 해당되는 전반적인 사항임을 감안하면 많은 수의 미국 유학생들이 사회 빈곤층을 가까이에서 보며 그냥 지나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을 듯 하다.
이러한 유학생들이 이런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사회의 지도층이 되었을때,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서 나눔과 조화의 미덕을 기대할 수 있을까...